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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해외

[1일 / 1972년 ]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선수 첫 파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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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선수는 개인적으로는 자유직업인의 지위이지만 선수들의 결사체인 메이저리그선수협회(Major League Baseball Players Association. MLBPA)는 법적으로 노동조합으로 인정받는다. 노동조합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노동조합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는 말이다. 노동조합의 권리 중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권리는 무엇일까. 바로 ‘파업권’(Strike)이다. 사용자에 대해서 근로자들이 일시적으로 노동력의 제공을 거부하는 것이다. MLB 프로선수가 근로자로서 소속 구단에 대해서 훈련 및 경기 참가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바로 그 파업이 MLB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때가 1972년 4월 1일이다. 4월 1일부터 시작해서 4월 13일까지 13일간 계속된 파업으로 MLB 86게임이 열리지 못했다. MLB 선수노조가 파업을 단행한 것은 구단 측에 선수 연금 기금 지급액의 인상 등 선수 복지 관련 요구를 했으나 구단 측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선수노조 사무총장 마빈 밀러는 3년의 연금 계약(Pension Agreement)이 만료되는 날인 3월 31일 이전에 구단 측과의 협상에서 연금 지급액의 인상을 구단 측에 요구하였으나 구단 측이 선수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파업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구단 측을 압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단 측은 선수들이 파업으로 인한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파업 기간만큼 급여 미지급)에도 불구하고 파업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밀러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러나 선수 사이에서 선수들의 권리를 위해서 구단 측에 맞서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 선수노조는 선수들의 압도적인 찬성(파업찬성 663, 파업 반대 10)으로 파업을 결정할 권한을 선수노조 집행부에 일임하는 결정을 했다. 결국 3월 31일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자 선수노조는 파업을 선언하고 다음 날부터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여론은 선수노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파업을 풀고 경기에 나서라는 여론이 더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노조는 물러서지 않고 파업을 계속했다. MLB 사무국과 구단 측도 경기 중단에 따른 여론 악화와 관중 수입 격감을 우려해 선수 노조와의 협상에 나섰고 4월 13일 극적으로 구단 측과 선수노조는 합의를 하였다. 선수노조와 구단 측은 연금기금 지급액 50만 달러를 증액하고 연봉 중재 절차를 도입하기로 한다. 파업 기간에 하지 못했던 경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선수도 그 기간에 해당하는 급여는 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났다.

파업으로 인하여 구단 측은 당시 기준으로 입장료와 중계료 손실 최소 500만 달러, 선수는 급여 손실 100만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선수노조에게 첫 파업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임을 입증한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MLB에서 선수노조에 의한 파업은 1972년, 1973년, 1976년, 1980년, 1981년, 1985년, 1990년, 1994~1995년, 2002년, 2021~2022년 총 10차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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