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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해외

[5일 / 1966년 ] '마빈 밀러' MLB 선수노조 첫 사무총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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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선수의 권익이 증진되는 전환점이 시작되는 때는 1966년이다. 바로 MLB 선수노조(the Major League Baseball Players Association, MLBPA)의 전임 사무총장(full-time executive director)으로 마빈 밀러(Marvin Miller)가 취임하여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날이 그 해 3월 5일이다.

지금은 미국 4대 프로스포츠의 하나로서 미국민뿐 아니라 다른 나라 국민의 인기를 받는 MLB이고, MLB 선수는 팬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등 부와 명예를 갖는다. 현재(2023년) MLB 선수의 평균 연봉은 4백9십만 달러고 최저 연봉액은 72만 달러다. MLB 선수는 적어도 연간 72만 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전의 마빈 밀러 /blogforarizona.net

마빈 밀러가 MLB 선수노조 사무총장에 취임한 당시 MLB 선수의 평균 연봉액은 1만9천 달러이고, 연봉 최저액은 20년째 6,000달러였다. 그런데 마빈 밀러는 MLB 선수의 연봉 사항도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지만 더 큰 문제는 MLB 선수의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부심을 부족하게 만드는 선수계약 제도적 환경이라고 봤다.

지금은 당연한 제도로 여겨지는 자유계약선수 제도(Free Agency)가 그때는 인정되지 않았다. 처음 MLB에 입성하여 한 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하면 구단이 동의하지 않는 한 선수는 다른 구단으로 이적할 수 없었다. 이른바 보류조항(Reserve Clause)의 문제였다. 매년 연봉을 정할 때에도 선수는 구단과 협상하더라도 구단이 정한 연봉액을 따를 수밖에 없고 선수가 그 연봉액의 타당성을 따질 절차가 제대로 마련되지도 않았다.

마빈 밀러는 바로 이러한 선수계약에서 선수들의 권익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제도적 문제를 고치기로 하였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뉴욕대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운 그는 전미 자동차 노동조합과 미국 철강 노동조합 등 노조 관련 조직에서 활동을 하였고 MLB 선수노조 사무총장 취임 직전에는 미국 철강협회 노동조합 대표 보조관으로서 협상가로 활동했다.

1968년 밀러는 프로스포츠 최초의 단체협약(CBA)을 체결하는 데 선수들의 협상을 도왔다. 단체협약을 통해 MLB 선수들의 최저 연봉액이 6,000달러에서 10,000달러로 인상되었다. 1970년 밀러는 MLB 선수의 연봉액 분쟁에 따른 중재 협상을 도와 선수의 권익을 찾아줬다. 특히 마빈 밀러는 1970년 커트 플러드(Curt Flood) 선수가 보류조항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하는데 조력하여 보류조항의 부당성을 미국 사회와 선수들에게 알렸고, 1975년 앤디 메서스미스(Andy Messersmith)와 데이브 맥널리( Dave McNally) 선수가 다시 보류조항에 대한 중재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하는데 일조해 보류조항의 폐지와 FA제도 도입을 끌어냈다.

MLB 선수노조는 마빈 밀러를 기리기 위해서 1997년부터 매년 현장에서의 활약과 지역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다른 사람들이 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를 선정  마빈 밀러 올해의 남자상을 수여하고 있다.

마빈 밀러 올해의 선수상 / mlbplayers.com

마빈 밀러의 노력으로 그가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1982년에 MLB 선수의 평균 연봉액이 24만1천 달러에 이르렀다. 2011년 별세한 마빈 밀러는 2019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야구 명예의 전당 마빈 밀러 명패 / basebal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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