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월 2일 토요일 오후 스코틀랜드 최대 항구도시 글래스고(Glasgow)에 있는 아이브록스(Ibrox) 축구 경기장에 약 8만 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글래스고를 근거지로 둔 두 프로축구팀 레인저스(Rangers)FC 대 셀틱(Celtic)FC의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두 팀 모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코클랜드 축구클럽으로서 스코틀랜드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구단이다. 그러한 두 팀이 대결하는 경기는 ‘Old Firm’(오래되고 단단한)으로 부를 정도로 전통의 라이벌 대결로서 양 팀 팬의 뜨거운 응원 속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1970년대 아이브록스 경기장 / bbc.com
이날 경기도 홈구장을 찾은 레인저스 FC 팬과 어웨이 팀인 셀틱 FC 팬이 열띤 응원을 하는 가운데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양 팀은 팽팽한 경기를 펼쳤고 경기 후반전 89분경 0대0으로 무승부가 예상됐으나 셀틱이 1골을 넣었다. 이에 홈팀 레인저스 팬들이 레인저스가 패배한 것으로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실망한 레인저스 팬들을 포함한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빠져나가면서 평상시처럼 13번 출구 계단 쪽으로 몰렸다. 13번 출구 쪽 계단은 버스 승강장과 지하철역이 가까운 곳인 까닭에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고 경사가 가파른 곳이어서 몇 년 전에도 사고가 발생하여 사상자가 나온 곳이라 경기장 안전요원이나 경찰의 안내가 필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경기장 안전요원이나 경찰의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몇 사람이 계단에서 넘어졌고 이어서 많은 사람이 연쇄적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으로 인해 피할 겨를도 없이 넘어진 사람 위로 넘어지게 됐다. 밑에 깔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66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압박성 질식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최고 1.8미터 높이로 쌓였다.
사고 당시 13번 출구 계단 모습 / bbc.com
‘스코틀랜드 Ibrox 축구장 참사’로 불리는 압사 사고가 일어나자 스코틀랜드 정부는 즉각 진상 조사에 나섰다. 사망자 유족들은 레인저스 구단 측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조사와 재판을 통해서 레인저스 구단 측의 안전 관리가 부실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한편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기고 일찌감치 레인저스의 패배를 예상한 관중이 경기장을 빠져나간 그 경기는 홈팀 레인저스가 후반전 막판에 극적으로 골을 넣어 레인저스와 셀틱이 1 대 1로 비겼다.
아이브록스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2001. 1. 2. 참사 30주년을 맞이해 아이브록스 경기장 외부에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 동상 기념비가 세워졌다.
추모 동상 기념비 / 레인저스FC 홈페이지
2011. 1. 2. 참사 40주년이 되는 날 아이브록스 경기장에서 열린 두 팀 간 경기 전에 선수와 관중이 1분간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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