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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국내

[3일 / 2016년] 일찍 핀 꽃 '노진규' 일찍 시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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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안현수 선수와 함께 메달 시상대에 선 노진규 선수(가운데)

 '제2의 안현수'로 불리며 2010년부터 성인 한국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노진규 선수. 2014년 1월 골육종에 의한 악성 종양 진단을 받은 이후 암 투병 중 2016년 4월 3일 향년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노진규 선수가 2013년 11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즈음에 그의 왼쪽 어깨가 붓고 병원 검진 결과 양성 종양 판정을 받았음에도 진통제를 먹어가며 고통을 참고 경기에 출전했던 그였기에 그의 사망 소식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2014년 1월 14일경 훈련 도중 미끄러지면서 심한 골절상을 입어 2014 소치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이호석에게 넘겨준 노진규 선수는 뒤이어  팔꿈치 수술과 함께 어깨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종양까지 제거하려다가 애초 알고 있었던 것과 달리 종양이 악성인 골육종으로 판명받았다. 바로 원자력병원에서 골육종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세상을 떠난 것이다. 

노진규 선수의 부모와 누나는  2013년과 2014년 사이에 노진규 선수를 진단한 의사 A 씨를 상대로 "A 의사가 의료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아들이 골육종 조기 진단과 치료받을 기회를 놓쳤고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진단·치료 방법을 선택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각각 2천만 원과 1억5천만 원을 배상하라며 의정부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법원 재판부는 2020년 6월 10일 2013년과 2014년 사이에 노진규 선수를 진단한 의사 A 씨에게 세차례 진료 중 세 번째 진료 때에는 종양 크기가 급격히 커진 것을 확인한 만큼,`거대 세포종`이 아닌 `골육종`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도가 더 높은 조직 검사를 시행하는 등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며 과실을 인정해 노 선수의 부모와 누나에게 각각 2천만 원과 5백만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한편 2018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노 선수의 모친은 인터뷰를 통해 '아들의 어깨 부위에 종양이 발견됐지만 전 아무개 빙상연맹 전 부회장이 올림픽이 달려있다며 수술을 막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어 2019년 전 전 부회장 등 당시 코치진이 선수의 부상 정도를 확인하지 않고 과도한 훈련을 강요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취지의 진정을 인권위에 제기했다.

인권위는 노 선수의 일기, 휴대전화 문자 등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부상이 심각한 노 선수의 안전과 건강, 장기적 경력 관리보다는 목전에 닥친 우리나라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개인전 출전권 획득이나 우수한 성적 등과 같이 종목단체나 지도자의 이해를 우선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면서, 다만 공소시효가 끝난 데다 전 전 부회장 등의 행위가 형사상 강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진정을 각하했다.


이후 이에 관한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전 전 부회장은 인권위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언론에 배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 1, 2심은 그의 청구를 기각했다.

노진규 선수의 사망은 우리 엘리트 체육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우리는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서 노진규 선수의 경우와 같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님에도 경기에 나서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적지 않게 봐왔다. 우리는 ‘부상투혼’, ‘애국심’ 등의 미사여구로 그들을 ‘칭송’한다. 우리가 그들의 출전을 강요한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한 출전 강요가 어디 국제대회뿐인가. 국내대회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신체적‧심리적 사정상 출전이 어려운 경우에도 출전을 강요받거나 출전할 수밖에 없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대회 출전뿐 아니라 평상시 훈련에서도 그렇다. 학생선수 시절 대부분의 선수들은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 훈련과 연습에 몰두한다.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 학기 중뿐 아니라 방학 중에도 전지훈련이나 대회에 참가한다. 과거에 비해 합숙 훈련은 줄었다지만 훈련과 대회 출전 시간은 거의 그대로다. 그 결과인지 우리 선수들이 학생이나 청소년 시절에는 세계적 수준에 올라선다. 개인종목의 경우 주니어 세계기록에 근접하거나 세계정상권의 기량을 보이고 단체종목의 경우 국제경기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성인이 돼선 기대와 다르게 세계정상권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또한 적지 않다. 청소년 시절 우리 선수와 대등하거나 뒤처진 성적과 기록을 보인 외국 선수는 일취월장으로 실력이 발전하는데 우리 선수는 답보 내지 침체에 빠진 경우가 꽤 있다. 심지어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는 경우도 있다. 일찍 핀 꽃이 먼저 시든 것이다. 우리 선수들을 먼저 시들게 하는 것은 소질이나 능력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실제 고질적인 신체 부상이나 심리적 동기의 소멸인 경우도 상당하다. 

우리 학생 선수들을 일찍 꽃 피게 하고 먼저 시들게 하는 원인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어릴 때부터 일정 경기 성적을 내고 기록을 세워야 하는 제도적 환경과 그에 따른 지도자와 학부모의 조급증이다. 오로지 경기 성적과 기록만을 기준으로 한 체육특기자제도에 의해 학생 선수로서 상급학교에 특례입학하기 위해선 청소년대표가 되거나 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해야 한다. 다른 선수보다 무조건 더 훈련해야 하고 단체종목에선 팀을 위해 몸이 아파도 진통제를 먹고 출전해야 하는 이유다. 지도자와 학부모도 모른 체 하거나 말리지 않는다. 그러한 결과 지상의 제도와 환경적 요인이 일찍 핀 꽃들을 일찍 시들게 하고 심지어 꽃망울에서 활짝 꽃을 피우지도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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